모든 프로 스포츠에는 FA 제도라는 것이 존재한다. 첫 계약 이후 일정 기간이 지나면 다른 팀으로 옮겨 갈 수 있는, 선수들에게 도움이 되는 제도다. 아무래도 이 FA 제도 덕에 소위 '프로는 돈으로 말한다'라는 말이 생겨날 수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는 프로야구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일정 기간이 지난 선수들이 FA를 선언하고 거액을 받고 팀을 떠나는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하지만 이런 아무런 제약이 없는 FA 계약만큼 위험하고 도움 안되는 제도도 없다. 모든 FA 제도에는 어느 정도의 제한이 있어야 공정한 FA 시장이 돌아간다.
한국 프료야구도 메이저리그와 약간은 다른 FA 제도를 운영한다. 아무래도 동업자 정신으로 야구를 하는 한국 프로야구와는 달리 좀 더 개인주의가 짙은 미국이기에 확실하게 FA의 선을 지켜주고 시장을 유지, 균형을 지키는 법의 제정이 필수다. (물론 여기서 말하는 법은 야구의 경기 외 규칙을 일컫는 말이다.) 그렇다면 한국 프로야구와 메이저리그와 가장 다른 제도는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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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로 퀄리파잉 오퍼라는 것을 신청 가능하다는 점이 가장 다르다. 메이저리그 FA 시장에서는 한국 프로야구와 달리 퀄리파잉 오퍼라는 독특한 시스템을 갖고 있다. 퀄리파잉 오퍼란 당해년도 FA 자격을 취득하는 선수들에게 해당 소속 구단에서 당해년도 연봉 상위 125명의 평균을 계산해 해당 선수의 내년 연봉으로 계약하기를 제안하는 제도다. 퀄리파잉 오퍼는 1년 단위의 계약만이 가능하다. 하지만 이 제안을 받아들이는 선수는 거의 없다. 왜냐하면 대부분 FA를 선언하고 나가는 선수들은 상위 125명의 연봉이 아닌 자신의 가치를 평가받고 더 많은 돈으로 받아가길 원하기 때문이다.
선수들이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할 것이라는 것을 알지만 이 것을 제안하는 구단의 속내는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퀄리파잉 오퍼를 받은 선수를 FA로 영입하면서 감당해야할 패널티가 많기 때문이다. 다시 한번 퀄리파잉 오퍼에 대해서 살펴보자. 퀄리파잉 오퍼는 말 그대로 제안이기 때문에 선수들이 당연히 거부할 수 있다. 그렇게 된다면 구단의 입장에서는 오히려 이렇게 적은 돈을 제안하는 것이 불리함으로 작용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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게다가 메이저리그처럼 운영 최대 상한선이 없는 리그는 상대적으로 부자 구단과 거지 구단이 명백하게 생길 수 밖에 없다. 게다가 팀도 30팀이니 오죽하겠는가. 그 결과 돈이 많은 부자 구단은 실력이 어느정도 검증된 FA를 여럿 잡을 수 있지만, 돈이 없는 거지 구단들은 항상 유망주를 얻어서 키워 낸 후 그 키워낸 선수를 내보내는 식으로 구단을 운영해야된다. 이렇게 된다면 무조건 리그 또는 지구 간에 불균형이 생기게 된다.
그렇기에 나온 방식이 퀄리파잉 오퍼다. 퀄리파잉 오퍼를 받은 선수가 소속 구단의 오퍼를 거절하면 구단에는 새로운 권한이 생긴다. 퀄리파잉 오퍼를 거부하고 FA 시장으로 나간 FA를 타 구단이 영입하면 그 구단의 1라운드 지명권을 빼앗아 올 수 있는 것이다. 1라운드 지명권이 넘어간 구단은 다음 신인 드래프트에서 해당 구단의 가장 빠른 지명권을 행사할 수 없게 된다. 심지어 드래프트 풀까지 감소하게 된다. 1라운드 지명권을 양도받은 구단은 다음 신인 드래프트에서 1라운드와 2라운드 사이에 추가 드래프트를 실시할 수 있다. 이렇게 자신의 핵심 선수를 FA로 보내게 되면서 생기는 공백을 더 높은 순위의 유망주를 뽑으며 리빌딩을 위한 팜을 구축할 수 있게 보상 받는 것이다.
하지만 이 퀄리파잉 오퍼도 1~10 순위 드래프트 픽은 보장된다. 즉, 전년도 승률이 21~30위 였던 팀의 1라운드 드래프트는 보장된다는 말이다. 퀄리파잉 오퍼 자체가 구단의 평준화를 위한 시스템이므로 성적 하위팀의 전력 유지는 이러한 추구점에서 그 맥락을 같이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 1~10 순위까지이므로 그 뒤로 추가 픽을 가지고 있으면 그 픽을 잃게 된다는 점은 기존 퀄리파잉 오퍼에 대한 패널티와 동일하다. 이는 1라운드에 한정되지 않고 2라운드, 3라운드로 넘어갈 수도 있다.
메이저리그가 2012년 퀄리파잉 오퍼 제도를 시행한 이후로 이 오퍼를 받아들인 선수는 단 세 명에 불과하다. 바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의 콜비 라스무스, LA 다저스의 브랫 앤더슨,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맷 위터스다. 이 들은 다음 FA 대박을 위해 'FA 재수'를 택했다. 이 퀄리파잉 오퍼 제도의 맹점은 최고 수준의 선수들에게는 별 문제 없지만 약간 애매한 수준의 선수들에게는 독이 될 수도 있는 제도라는 점이다. 작년 시즌 퀄리파잉 오퍼를 거절한 선수들을 살펴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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덱스터 파울러, 이안 데스몬드, 하위 켄드릭, 이와쿠마 히사시, 다니엘 머피, 이안 케네디, 요바니 가야르도 (이상 7명)가 기존 퀄리파잉 오퍼 보다 낮은 연봉으로 재계약을 했다. 이 중 이와쿠마 히사시와 요바니 가야르도는 신체검사 결과때문에 낮은 연봉의 재계약을 이루었고, 하위 켄드릭, 다니엘 머피, 이안 케네디는 다년 계약을 했다는 점에서 실패한 계약은 아니라고 본다. 오직 덱스터 파울러와 이안 데스몬드만이 퀄리파잉 오퍼보다 좋지 않은 계약을 했는데, 이 것이 퀄리파잉 오퍼가 보여주는 맹점을 설명해주는 가장 좋은 예라고 볼 수 있다.
이처럼 퀄리파잉 오퍼는 팀과 선수에게 약이나 독이 될 수 있는 제도다. 하지만 확실히 현재 국내 프로야구의 FA 거품을 잡기 위해서 꼭 필요한 제도 중 하나임에는 확실하다고 생각한다. 그만큼 현재까지는 장점이 단점보다 많은 제도라고 볼 수 있다.
자료 출처 : MLB.com, ESPN, 베이스볼젠 (BaseballGen)
사진 출처 : MLB.com, 게티이미지 (Gettyimages)